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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서양-랜드해 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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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25 ==== 날짜가 바뀐 직후, 이번 추격전 최초의 항공 공격이 감행되었다. 본대에 앞서 달리던 항모 케스트럴(RNS Kestrel)이 보탄(KMS Wotan)과의 거리를 뇌격기의 행동반경 안까지 좁히는 데 성공한 것이다. 00시 30분, 뇌격기 9기가 어둠과 스콜 속으로 발진했다. 승조원 태반이 실전 첫 출격인 데다, 시속 130km 남짓의 구식 기체로 야간 대양 항법을 해야 하는 무리한 공격이었다. 그럼에도 뇌격대는 탐지 장비를 갖춘 선도기의 유도로 표적을 찾아냈고, 대공포화가 하늘을 찢는 가운데 파도 위 20m까지 내려가 어뢰를 뿌렸다. 명중 1발. 그러나 어뢰는 함체 중앙의 주장갑대를 때렸고, 보탄이 입은 피해는 도장이 벗겨진 정도에 그쳤다. 다만 명중의 순간 급격한 회피 기동을 반복한 대가로 함수 파공부의 응급 방수 매트가 뜯겨 나가, 침수가 다시 시작되었다. 9기는 연료가 바닥난 채 전기 모두 귀함에 성공했는데, 훗날 케스트럴의 비행장은 이 밤을 "기적이 우리 편이었던 유일한 시간"이라고 회고했다. 그리고 세 시간 뒤, 기적은 편을 바꾸었다. 03시 06분, 보탄은 겨우내 갈고닦은 그 수법을 다시 꺼내 들었다. 추적하는 페어헤이븐(RNS Fairhaven)과 스톤헤이븐(RNS Stonehaven)이 지그재그 초계 기동의 바깥쪽 다리를 도는, 탐지 공백이 가장 길어지는 순간을 노려 우현으로 크게 원을 그리듯 변침한 것이다. 보탄은 추적자들의 후방을 가로질러 완전히 반대 반향으로 빠져나갔고, 04시 01분 페어헤이븐의 탐지 화면에서 표적 휘점이 사라졌다. 처음에는 스콜에 의한 일시적 소실로 여겨졌으나, 두 시간의 수색에도 접촉은 회복되지 않았다. 06시, 란츠의 상황실 지도 위에서 보탄의 표지가 다시 '위치 불명'으로 바뀌었다. 겨울의 악몽, 두 달간 루이나를 마비시켰던 그 세 글자였다. 최악의 가정은 명확했다. 만약 보탄이 이대로 수리를 마치고 대서양 어딘가로 다시 사라진다면, 리퍼블릭(RNS Republic)의 1,400명은 아무 대가도 받아내지 못한 채 바다에 남겨지는 것이었다. 포위망이 허공을 움킨 그 아침, 추격을 되살린 것은 다름 아닌 뤼첸스 본인이었다. 08시 52분, 보탄의 무전실은 본국 사령부를 향해 30분에 걸친 장문의 전황 보고를 송신하기 시작했다. 리퍼블릭 격침의 상보, 자함의 손상 목록, 탐지 장비 대응 전훈까지 담긴 상세한 보고였다. 문제는 그 송신이 이루어진 이유였다. 뤼첸스는 새벽의 이탈 기동이 성공한 것을 모르고 있었다. 지난 24시간 내내 탐지 장비에 물려 있던 경험 탓에 그는 여전히 추적당하고 있다고 확신했고, '어차피 위치가 노출된 이상' 무선 침묵은 무의미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겨우내 란츠의 상황실이 독일 함대의 아킬레스건으로 지목해 둔 무선 습관이, 가장 결정적인 순간에 가장 나쁜 형태로 도진 셈이었다. 대서양 연안에 늘어선 방향 탐지국들이 일제히 이 송신의 방위를 물었고, 09시 30분경 상황실의 지도 위에는 교차 방위선들이 만드는 좁은 다각형이 그려졌다. 보탄은 살아 있었고, 남동쪽, 즉 프랑스로 향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날의 연합군은 이 선물을 받아 들고도 반나절을 헛되이 태웠다. 방위 측정 결과가 본대 기함 리버티(RNS Liberty)로 전달되는 과정에서 도상 작업의 착오가 겹치며, 참모진이 교차점을 실제보다 수백 킬로미터 북쪽으로 잘못 산출한 것이다. 보탄이 북방 항로로 귀환한다는 결론이 내려졌고, [[알렉스 베렌하르트]]의 본대는 07시간 동안 정반대에 가까운 북동 침로로 항주했다. 오후 늦게 상황실의 재검산과 추가 방수(傍受)가 착오를 바로잡았을 때, 본대와 보탄의 거리는 회복이 불가능할 만큼 벌어져 있었다. 이 시점에서 산수는 잔인해졌다. 보탄의 침로와 28노트의 속력을 대입하면, 27일 새벽에는 독일 공군의 엄호권과 유보트 초계선 안으로 들어간다. 본대의 전함들로는 따라잡을 수 없다. 그 앞을 막아설 수 있는 위치에 있는 것은 남쪽에서 북상 중인 별동대, 그중에서도 항모 페레그린(RNS Peregrine)의 함재기뿐이었다. 베렌하르트가 이날 밤 일지에 남긴 문장은 한 줄이었다. "이제 함대의 운명이 복엽기 조종사들의 어깨 위에 있다." 한편 이 모든 소동의 중심에서, 보탄의 함내는 기묘한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이날은 공교롭게도 뤼첸스의 쉰두 번째 생일이었다. 아침에는 본국의 총통 명의로 축전이 도착했고, 승조원들은 리퍼블릭 격침의 흥분이 채 가시지 않은 채 사령관의 생일을 자축했다. 그러나 정오, 함내 방송에 직접 나선 뤼첸스의 연설은 축제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었다. 그는 적 함대 전체가 자신들을 쫓고 있으며, 앞으로의 싸움은 "이기느냐 지느냐가 아니라, 승리냐 죽음이냐"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직한 상황 인식이었으나 병사들이 듣기에는 사형 선고와 다름없었고, 생존자들은 이 연설 이후 함내의 공기가 눈에 띄게 가라앉았다고 입을 모은다. 함장이 뒤늦게 갑판을 돌며 "프랑스까지는 하루 반이면 닿는다"고 다독여야 했을 정도였다. 그날 밤 보탄은 등화를 완전히 지운 채 남동으로 달렸고, 수평선 어디에도 추적자의 그림자는 없었다. 프랑스까지 남은 거리는 약 700해리. 이대로라면, 뤼첸스는 이번에도 빠져나가는 것이었다.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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